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39 에어라코브라 (문단 편집) === 마개조와 좌절 === [[파일:P39turbo.jpg]] (터보차져가 달린 초기형 프로토타입. 동체 측면에 공기 흡입구가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예상 성능보다 시제기의 속력이 계획되었던 시속 400마일에서 10마일 정도 좀 더 느리게 나오자 육군항공대 사령관이던 [[헨리 아놀드]] 대장의 요구에 따라, 제작사에서는 [[NASA]]의 전신인 NACA("미국 국가항공자문위원회 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에 풍동실험을 의뢰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비행기의 운명을 뒤틀어 놓았다. 풍동 실험을 비롯한 여러 실험 결과 NACA에서 처음 내놓은 제안은 내부의 [[터보]]차저([[과급기]]) 관련 덕트와 냉각 시스템, 배기구 시스템등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P-39는 이미 시제기까지 만든 상태여서 재설계도 어려웠을 뿐더러, 내부 공간을 대구경 기관포와 엔진이 잡아먹고 있다보니 공간상 여유도 없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튀어나온 [[터보]] 차저([[과급기]]) 장치의 공기흡기구를 아예 떼어버리는 것. 1939년 미육군항공대와 NACA, 그리고 벨은 이에 대해 논의하였고 결국 벨은 터보차저를 떼어내고 엔진에 1단-1속 수퍼차저([[과급기]])만 다는 것을 제안하였다.[* 단, NACA는 어디까지나 육군항공대의 헨리 아놀드가 의뢰한 속도향상에 대한 조언을 하였을 뿐이고 실제 설계변경을 결정한 것은 이를 제안한 벨과 그 제안을 받아들인 미 육군항공대였다.] 게다가 시제기엔 없던 방탄판이 곳곳에 증설되어 양산기는 [[프로토타입]]의 두배에 달하는 중량으로 뚱보가 되어 버렸다! 당장 프로토타입에서 1.8t이었던 기체가 양산형인 D형에서는 3.7t에 달했다. 당연히 이 늘어난 중량은 비행성능에 크게 악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시제기에서 실제 양산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방탄판을 비롯한 방탄, 내탄 설비가 추가되는 것은 2차 대전시기의 전투기라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이 2차대전 직전에서 전쟁초기까지 개발되던 많은 기종들이 실제 전쟁의 경험의 결과로 참고로 개발 중간에 무장과 방어력의 강화를 요구받은 경우는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P-39에 방탄장갑으로 추가된 무게는 111kg 정도라고 한다. 물론 자동방루 연료탱크나 방탄유리 등이 더 붙어야 했으므로 무게는 조금 더 늘었을 것이다. 참고로 [[F4F 와일드캣]]의 조종석 방탄장갑 무게는 68Kg, [[F6F 헬캣]]의 경우 96Kg 정도다. 물론 이 외에 연료탱크와 오일쿨러 주변의 방탄장갑이나 방탄유리, 연료탱크의 자동방루설비 등은 제외한 무게다. 그 작은 Bf109도 기본적인 방탄장갑 방탄유리를 달고 날아다녔고, 스핏파이어도 방탄장갑 방탄유리에 연료탱크와 콕핏 사이엔 강철제 방화벽도 설치하고 날아다녔다. 만일 실험기 성격의 시제기에 애초부터 방탄설비가 장착되어있지 않았다면 이는 특별히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라는 것. 굳이 따진다면 P-39의 경우 엔진이 조종석 뒤쪽에 위치하는 탓에 조종석 전면의 방탄장갑 면적이 더 넓게 필요해 다른 기체보다는 조금 더 많은 방탄장갑이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 차이는 많이 잡아도 50kg 미만일 듯. 하지만 그걸 못 버틸 정도로 원래 설계가 여유가 없었다면 결말은 F2A 버팔로나 A6M2 짝이 날 수밖에 없다. P-39가 애초 그런 정도로 휘청일 기체도 아니었고. 애초 개발 컨셉부터가 '총 중량 1000lb 즉 450kg 이상의 무장과 탄약을 탑재하고도 빠르게 상승해 고공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며 적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전투기'였다.][* 다만 고작 방탄판이 1,000kg씩 될리가 없는데(이정도 개량이면 그냥 [[전차]]다) 중량이 거의 2배가 된 걸 봐서는 이상한데서 손을 봐서 기체를 망친듯하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된 과정에는 원래 개발계획을 담당하던 벤자민 켈시가 바로 이 시점에 영국 복무 명령을 받고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원래 개발을 주관했던 벤자민 켈시와 고든 새빌은 위에서도 지적했듯 보다 강력한 무장과 고성능을 갖춘 전투기 개발을 위해 '고공으로 침공해오는 적 폭격기를 요격할 전투기'라는 명분을 세웠고, 때문에 P-39의 P-38 개발과정에서 바로 '터보수퍼차저 사용'을 명시적인 요구사항으로 내걸었고 기체 전체의 설계방향도 터보수퍼차저 사용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이를 알고 있는 켈시는 이후 터보수퍼차저의 공기흡입구 형상 문제의 개선을 이끌고 싶어했지만, 영국 복무 명령을 받고 손을 떼어야 했고 이후 개발과정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떡하니 터보수퍼차저 삭제라는 황당한 해법이 나온 것.[* 애초 시속 10마일 정도의 속도차이를 이유로 NACA 풍동시험을 지시한 헨리 아놀드 사령관도 굳이 따지면 당시 미 육군항공대의 [[폭격기 무적론]]의 적극적 주창자는 아니어도 동조자 정도는 되었는데, 그것이 P-39의 이런 당황스런 개악과정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최고로 웃기는 것은 애초 개선요구의 출발점이 된 속도 미달이, 바로 '6000m 고고도에서 최고속도가 계획치에 (10마일 정도) 부족하다'에서 시작했다는 것. 이렇게 되니 고공성능이 매우 실망스런 수준이 된 것은 당연했다. 터보 차저 없는 엔진은 고도 4,000m만 올라가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렸고''' 37mm 기관포는 한번 쐈다하면 조종석 안으로 초연과 [[일산화탄소]]를 사정없이 불어넣어 가뜩이나 산소 마스크도 없는 조종사 또한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게''' 만들었다. 또한 속도는 최초 설계보다 50km/h나 떨어져서 600km/h 근방을 왔다갔다 했으며, 그나마 이 속도를 유지했으면 대전 초반의 전투기로서는 매우 준수했지만, 문제는 조금만 고공으로 올라가면 미친듯이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승력[* '스펙상'으로는 그냥 그런 정도다. 초기형인 P-39D도 우수하지는 않지만 대충 해군의 와일드캣 정도는 된다. 그리고 후기형인 P-39M이나 P-39Q의 경우 17m/s, 19m/s 이므로 꽤 좋다. 어쨋든 원래 요격기를 목표로 개발한 물건이라 스펙상 숫자 자체로 완전한 x망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실제로 올라갈 곳이 없으니 그저 종이 위의 숫자일 뿐.]과 가속능력, 항속거리 또한 당시 미군 전투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미 육군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실전에서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체결함이 무려 19가지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고공까지 올라갈 일이 없어져 버려 고공용으로 만든 산소공급장치 등의 고공전용 장비들이 제거되어 영·미 공군에서는 저공 전투기 겸 공격기로나 좀 사용되었다. 물론 저공에서의 비행성능은 기대만큼 뛰어났으나 정작 상대해야 할 [[제로센]]이나 [[Bf109]]는 고도 5,000m 이상에서 득시글댔으니 적을 잡으러 가기는 커녕 표적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미제 원형을 카리브(Caribou)I으로, 주문 생산형을 에어라코브라I(미군명 P-39D-1)으로 이름붙여 도입했던 [[영국]]마저 실망스런 성능에 더 이상 도입하지 않기로 하였고, 이미 받았던 기체들은 전부 소련으로 렌드리스를 통해 보내버린다. 반면 주문이 취소되어 재고로 쌓여 있던 물건들은 [[진주만 공습]] 이후 급히 물자가 필요한 미군에 의해 P-400으로 재명명하여 도입됐다. 이 물건들은 이미 영국의 요구에 맞추어 생산되었으므로 37mm 대신 20mm 히스파노를 장착했다. 400이라 붙인 이유는, 그 당시 400 mph를 최고 속도로 낼 수 있다는 카탈로그 스펙 덕분이었으나,[* 렌드리스 물자로 광고를 때린 거다...] 영국에서 실제로 테스트해본 바에 의하면 350 mph도 간신히 낼 수 있던 수준이었다. 미국은 이렇게 퇴짜맞은 물건을 [[태평양 전쟁]]에 투입했다가 영 시원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으며, 새로운 전투기들을 찾게 되는 바람에 사용률이 바닥을 쳐서 덕분에 재고가 넘쳐나게 된다. 그러다 마침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헬프신공을 보내자 남아돌던 기체들을 선심쓰듯 아낌없이 [[무기대여법]]으로 공여해주었다. 정작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 중반까지 완전히 전선에서 강판시켜 버린다. 그런데 해군의 [[PT 보트]]들은 부무장이 M2 중기관총이라 고속정과 싸울때는 아무래도 화력이 부족했고 화력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는데 추락한 P-39등에서 M4 37mm 기관포를 뜯어내서 PT보트에 달아봤더니 경장갑인 고속정 상대하기엔 그만인지라 아예 포를 개량해서 PT보트들이 달고 다녔다. 미국내에선 상당량의 기체들이 일선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물러나 조종사들의 훈련기로 사용되었는데 훈련병들조차 자신들이 P-39를 타고 훈련을 받는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Don't give me a P-39, the engine is mounted behind. She'll tumble and roll, and she'll bore a deep hole. Don't give me a P-39. 저에게 P-39를 주지 마세요. 엔진이 뒤에 달려있어요. 그녀는 구르고 구르다 깊은 구멍을 내버릴 거예요. 저에게 P-39를 주지 마세요.|| 역도입 버전의 기체 명칭이 P-400인 걸 이용한 이런 농담도 있었다. ||P-400이 무슨 뜻인 줄 알아? 응. [[데드식스|꽁무니]]에 [[제로센|제로(0)]]가 붙은 [[P-40 워호크|P-40]]|| 그래서 이 전투기는 이미 제2차 세계 대전 중반을 넘기지도 못하고 태평양 전선 및 서부 전선에서는 실패작으로 분류되었다. 영국군에서도 됭케르크 근처 독일 선박 공격하는 데 한 번 투입하고 전부 뒷전으로 돌렸으며, 해당 비행대는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스핏파이어]]로 기종 전환하게 된다. 물론, 연합군에서도 무작정 미운오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 전선에서 그야말로 적 멀티를 바로 탈취해서 초반 버티기를 해야 하는 과달카날 전역에서는 캑터스 비행단에 배속되어 분전한다. 당시 미군은 해병대의 와일드캣, 던틀레스, 육군의 P-40, 그리고 P-39 정도 밖에는 없었고 이것들로 당시 일본군의 숙련된 조종사들과 객관적으로도 비행성능이 우월했던 제로센을 상대했던 것. P-39는 저공에서 그럭저럭 쓸만한 성능을 이용해 주로 저공을 커버하는 방공전투기 혹은 해상공격(일본군의 수송선 등)에 사용했으며 덕분에 사보 섬 해전에서 탈탈 털려서 위태위태했던 헨더슨 비행장을 지켜내는 데 일조를 했던 것이다. 중간에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 바람에 미운오리새끼가 되어버렸으나 그나마 태평양에서는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낸 셈이다. 당연하게도 P-38이 도착하자 버려지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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